한국에 온 베트남 신부 응웬홍민(Nguyễn Hồng Minh)에게는 여성 경찰관의 꿈이 현실이 되었다. 올해 38세인 그녀는 현재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성군 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응웬홍민 씨는 중부 응에안성 빈(Vinh)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5년 광주광역시에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갔다.
어렸을 때부터 여성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며, 경찰이 해결한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한 범죄 사건에 매료되었다고 민 씨는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경찰이라는 직업이 여성에게 너무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고 처음에는 그녀에게 경제학 분야로 진로를 안내했다.
남편과 가족에게 한국 경찰 시험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을 때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가족들은 모두 경찰이 되겠다는 계획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아버지는 고국에서 경찰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국에서 경찰이 되는 것은 다욱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셨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에 힘입어 민 씨는 준비를 시작했다. 전문 지식도 어려웠지만, 당시 몸무게가 100kg에 달했던 그녀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시험의 체력적인 측면이었다.
민 씨는 10개월 만에 40kg을 감량하고 2018년 대한민국 경찰 공채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6개월의 교육과 2개월의 인턴십을 거쳐 장성군 경찰서에 정식으로 발령 받았고, 가정폭력, 학교폭력, 실종 사건 등을 수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하면서 동료 베트남 신부들의 도움 요청을 많이 받았다.
특히 2022년 초, 한국 경찰은 한국 내 베트남 커뮤니티와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는 9만 7천 명에 달하며, 베트남어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한국 법무부의 한국 내 베트남 커뮤니티를 위한 정책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에게 수년간 학대를 당한 베트남 신부의 사연을 떠올렸다. 민 씨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긴 메시지를 통해 이 여성의 전화번호를 요청해 직접 대화하고 조언을 나눴다.
“이 여성은 남편의 학대를 수년간 견뎌왔지만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관할 기관에 신고하는 절차를 안내해 주었다”라고 민 씨는 말했다.
이 여성은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센터로 이송되어 남편과 이혼을 위한 법률 자문을 받았다.
현지 법률에 따라 사건을 해결하는 것 외에도 그녀는 베트남 신부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전라남도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근로 계약이 만료된 후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민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법규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의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병에 걸리면 치료비의 10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큰 비용이 될 수 있다. 미등록 체류자는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베트남으로 송금할 때 제3자를 거쳐야 하고 사기를 당할 위험도 크다”라고 말했다.
한국어, 영어, 베트남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한 그녀는 업무 수행에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한국 경찰청장의 베트남 방문 시 호위, 통역, 안전 보장 등의 특수 임무를 수행했으며, 베트남 공안부 차관 및 대표단의 한국 방문 시 영접, 호위, 통역 등의 임무를 맡았다.
이는 통역사가 업무 내용, 특히 전문 용어를 숙지하고 세심하게 준비해야 하는 매우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별한 출장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남겼다.
“베트남 고위급 지도자들을 수행했을 때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외국인인데 왜 베트남어를 그렇게 잘하느냐’고 물어봤다. 베트남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랐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현재 업무에 대해서 “경찰관이 되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커뮤니티를 도와 정보 부족으로 인한 범죄 상황을 예방하는 목표”라고 민 씨는 말했다.
출처: 베트남 경제